대법 “성폭력 무혐의여도 고소인이 무조건 무고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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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폭력 무혐의여도 고소인이 무조건 무고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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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7-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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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폭력 무혐의여도 고소인이 무조건 무고죄는 아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고소 내용을 적극적으로 허위로 판단해 고소인을 무고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인이 허위 고소를 했다고 단정하면 안 되고, 피해자가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는 신체접촉은 성폭력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ㄱ씨의 상고심에서 ㄱ씨를 유죄로 보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14일 밝혔다. 

ㄱ씨는 2014년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하는 등 자신을 강제추행했다며 직장 동료 ㄴ씨를 고소했다. 이후 검찰이 ㄴ씨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하자 ㄴ씨가 ㄱ씨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했다. 검찰은 ㄱ씨도 불기소 처분했지만, ㄴ씨의 재정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ㄱ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는 다수 배심원들이 ㄱ씨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2심도 결론은 같았다. 술을 마시고 술집을 나오는 등의 과정에서 ㄱ씨가 ㄴ씨를 저지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1·2심이 유죄로 본 이유였다. 또 ㄴ씨가 ㄱ씨에게 폭행·협박 등의 유형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만약 ㄱ씨가 갑작스러운 ㄴ씨 행위로 인해 실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라면 근처 편의점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근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연락해 도와달라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ㄱ씨는 ㄴ씨가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그와 같이 대처하지 않고 단순히 택시를 탔다”고 했다.  

대법원은 소극적 증명만으로는 신고사실이 허위라고 단정해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검토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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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대법원은 이같은 법리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사람의 무고죄를 판단할 때도 적용돼야 한다며 ㄱ씨를 무고 혐의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사실에 관해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해 그 자체를 무고했다는 적극적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개별적·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했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ㄱ씨 사건에 대해서는 “원심이 유죄인정의 근거로 밝힌 사정들은 ㄱ씨의 고소내용이 객관적으로 허위임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삼기에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입맞춤 이전에 ㄴ씨와 신체접촉이 있었다거나 ㄴ씨가 (폭행·협박 등) 유형력을 행사했는지, ㄱ씨가 강제추행을 당한 직후 공포감을 느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등은 ㄱ씨가 ㄴ씨로부터 일순간에 기습추행을 당했는지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설령 ㄱ씨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ㄱ씨는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언제든 그 동의를 번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할 자유를 가진다”며 “ㄱ씨가 주장하는 기습추행이 있기 전까지 ㄴ씨와 사이에 어느 정도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해 입맞춤 등의 행위에 대해서까지 ㄱ씨가 동의하거나 승인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