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인동초’ 키워낸 공간에 ‘평화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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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인동초’ 키워낸 공간에 ‘평화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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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8-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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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인동초키워낸 공간에 평화의 김대중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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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하의도(34.63)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2살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전남 목포항에서 하루 2편뿐인 차도선(차를 실을 수 있는 배)으로 2시간30분가량 걸린 이곳은 뭍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외딴섬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일에 40~50, 주말에 70~8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하의도 후광리의 김 전 대통령 생가를 관리하는 현이민(63)씨는 벼르고 별러서 오시는 분들이 많으며 꾸준히 찾아주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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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19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나고 자란 전남 신안 하의도 생가

하의도 생가 방문자가 늘어난 것은 천사대교 개통 덕분이다. 과거엔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지만, 지난 4월 천사대교(10)가 개통된 뒤 지금은 안좌도까지 승용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목포항에서 안좌도까지 차로 30~40, 안좌도에서 하의도까지는 배로 1시간으로 이전보다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김경민(61) 신안군 내고장 알림이는 안좌도까지 차를 타고 와서 김환기 화백 생가를 둘러본 뒤, 안좌 복호항에서 하의도행 배를 타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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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전남 목포의 상징적 공간인 삼학도에 자리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하의도는 김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인동초를 닮은 섬이다.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농민들은 비어 있던 섬을 개간해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인조가 선조의 첫째 딸 정명 공주에게 하의3(하의도·상태도·하태도)의 세곡을 4대까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하사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의 소유권 탈환투쟁이 시작됐다. 1956년 평당 200원에 주민들에게 유상 분배되면서 300여년간의 싸움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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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평생을 머무른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이름이 나란히 문패에 새겨져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김대중 도서관.

하의면 대리엔 피와 눈물로 얼룩진 농민들의 항쟁사를 조명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고향 방문이 된 2009년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하의3도 사람들이 불의에 맞선 정신이 나에게도 흐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418일 김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방명록에 그립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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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년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고 있던 수의.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 전시돼 있다.

하의도가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면, 그의 정치적 고향으로 꼽히는 곳은 목포다. ‘섬 소년은 하의도를 떠나 목포에서 유학했다. 이곳엔 김 전 대통령의 기억·기념공간이 마련돼 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그를 기념해 삼학도에 만든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다. 2013615일 개관일은 최초 남북정상회담 개최일(2000615)에 맞춘 것이다. 김석이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시운영팀장은 개관 이후 방문객 수는 지난달 말까지 120만여명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방문객은 첫해 14만여 명에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전두환 등 자신을 탄압했던 전직 대통령과 화해했다. 대통령 재직 때보다 퇴임 이후에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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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의 상징적 공간인 삼학도에 자리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경

김대중 기념관은 현실 정치의 공간이기도 하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안희정·안철수 등 정치인들이 김대중 기념관을 방문하는 등 정치의 계절에 더 붐빈다. 정헌주 연세대 교수(행정학)김대중 기념관과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논문(2018)에서 김대중 기념관은 정치인들이 호남의 지지, 나아가 진보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마땅히 거쳐야 하는 상징적 장소가 됐다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만이 아니라 정치인 김대중, 인간 김대중에 대해 사유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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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의 삼학도에 자리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4층 전시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자택과 김대중도서관

김 전 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현장이다. 1961514일 재보궐선거에서 초선 민의원이 됐으나, 이틀 뒤 5·16 군사 쿠데타로 의원직을 잃은 이후부터 1995년 경기도 일산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그는 동교동에 살았다. 그는 동교동 자택에서 1971년 사제 폭탄 투척 사건과 1973년 일본에서의 피랍 사건,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과 투옥, 사형 선고, 가택연금 등 고통과 인내의 세월을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재건축된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와 2009년 눈을 감았다.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인들을 지금까지도 동교동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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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 역대 대통령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 바로 옆에 마련한 김대중도서관은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이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도서관 5층 사무실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1978831일 서울대병원 병실에 투옥된 그가 군부 독재정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과자 봉지에 못으로 눌러써 이희호 여사에게 전달한 편지 36통과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을 때 입고 있던 수의 등이 전시돼 있다. 5층 규모의 도서관에는 전시관뿐만 아니라 사료관, 회의장, 연세대 북한연구원 등도 마련돼 있다. 하루 15~20, 한 해 6~7천명이 이 도서관을 찾는다. 18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10돌을 앞두고는 방문객이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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