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독립 내팽개친 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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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4-14 12:14본문
사법 독립 내팽개친 판사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현 정권의 이른바 ‘사법 적폐 청산’의 시작을 알린 글은 2017년 2월 김형연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연구 모임에 중복 가입한 판사는 모임 하나만 택하라”고 공지하자, ‘중복 가입자가 많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해 사법 독립 활동을 저해하려는 조치’라고 반박한 글이었다. 김형연 판사는 이 연구회 간사였다. 이 글에 김영식·이수진 등 골수 인권법 판사 수십 명이 ‘깊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보통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를 ‘중복 가입 해소’ 문제를 ‘사법 독립’ 문제로 연결시켜 적폐 몰이의 화약으로 썼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표를 내러 온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수리하면 (여당이) 탄핵을 못한다”고 한 사실이 올 초 공개됐을 땐 이들 전부가 입을 닫았다. 시민들이 “대법원장이 여당과 짜고 판사를 탄핵했다”고 분노해 보낸 ‘사법부 근조(謹弔)’ 화환들이 대법원 담장을 에워쌌는데도 인권법 판사들의 예민한 ‘독립 감수성’은 발동되지 않았다. 사법 독립은 애당초 관심사가 아니었다. 양승태 대법원의 권한 남용을 3차례 조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사건을 검찰로 넘기고, 이후 ‘적폐 판사 탄핵’까지 주도한 이들의 그 집요한 ‘개혁 살기(殺氣)’의 원동력은 인사 불만이었다고 생각한다.
만나 본 인권법 핵심 판사들은 법원행정처 자체에 강한 반감을 보였다. 법원행정처 판사로 발탁되지 못했다는 ‘인사 소외감’이 그 반감의 뿌리로 느껴졌다. 반대로 이들은 그 인사 욕구가 충족되면 입에 달고 살던 ‘사법 독립’을 바로 내던졌다. ‘사법 개혁의 기수’로 불렸던 김형연·김영식 판사는 현 정권 출범 후 판사직을 던지고 각각 이틀, 3개월 만에 청와대로 직행했다. 이들을 움직이는 건 ‘자리’였고 ‘사법 독립’ ‘진보’ 같은 말들은 그 자리로 가기 위한 포장지였던 것 같다.
인권법 판사(400여명)를 제외한 나머지 2600명 판사들 중에서도 김 대법원장의 ‘판사 탄핵’ 발언을 비판한 판사는 없었다. 4년 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터졌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최근 몇 년간 판사 사회에선 ‘내 일이 아니면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양승태 행정처에 의한 인사 불이익 의혹 등은 내 인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내 일’이었지만,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은 나와 상관없는 행정처 출신인 ‘임성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현직 판사 면전에서 ‘탄핵’ 얘기를 꺼내고, 그런 말 안 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탄로 나고도 야당 의원들 앞에서 “사퇴할 생각 없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건 이런 법원 토양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 독립을 출세 도구로, 남의 일로 여기는 3000명 판사들의 분신(分身)이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김경배 기자 klawdaily@naver.com